만들어둔 서비스가 하나 있는데, 한 번도 안 팔아봤다면 — 그건 "실패"입니까, 아니면 "아직 안 한 일"입니까?
저는 이걸 실패로 기록했습니다. 그 이유가 이 글의 전부입니다.
왜 하필 크몽이었나
두 달 전 여섯 채널을 전수 감사했더니 전부 트래픽 0이었습니다. 웹 SEO도, 유튜브도, Threads도, 인스타도. 그런데 딱 한 군데는 성격이 달랐습니다. 크몽은 이미 "사려는 사람"이 검색해서 들어오는 곳입니다. 제가 트래픽을 끌어올 필요 없이, 구매 의도가 있는 사람이 알아서 찾아옵니다. 저한테 없는 게 정확히 그거였으니, 크몽이 유통으로 작동하는지 실측해보고 싶었습니다.
첫 상품을 정했습니다. 스마트스토어 상품명 키워드 진단 리포트. 셀러가 상품명을 보내면 살아있는 키워드·검색량 없는 키워드·리라이트 1안을 PDF로 돌려주는 건당 판매 서비스입니다. 제가 스마트스토어를 직접 운영하고 있어서 만들기 수월했고, 파이프라인 제작 자체는 즐거웠습니다.
재료는 다 만들었습니다
- 리포트 생성 파이프라인: 상품명 파싱 → 키워드 판정(claude CLI) → PDF 조립까지 자동.
- 버그를 실측으로 세 번 잡았습니다. LLM이 판정 프롬프트를 어겨 재료용 검색어를 온타깃으로 잘못 분류한 사고, 원본 수량 표기(
2개 묶음)를 삭제한 사고, 특수문자를 임의로 끼워 넣은 사고. 프롬프트 보강만으로 안 끝내고 기계 가드(keepSpecs(),cleanTitle())와 테스트를 코드에 박아 재발을 막았습니다. - 고객 입력이 판매자센터 엑셀을 그대로 붙여넣은 경우(탭/CSV+헤더 행) 줄 전체를 상품명으로 잘못 먹는 버그도 잡았습니다. 한글이 든 열 중 최장 열만 상품명으로 인정하도록 고쳤습니다.
- 미완 리포트는 절대 납품하지 않도록 exit 1 + 미완 목록을 뒀습니다.
- 가격(BASIC 29,000 / STANDARD 59,000 / DELUXE 149,000)과
deliver.sh 상품명.txt "고객명"한 줄로 PDF가 나오는 납품 스크립트까지 완성했습니다. - 심사 규격(순위·매출 보장 표현 금지, 썸네일 포함)에 맞춰 상세페이지 카피도 써뒀습니다.
이쯤 되면 "다 됐다"는 착각이 듭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당신이라면 이 시점에 뭘 먼저 하시겠습니까
재료가 다 준비된 시점에서 남은 건 딱 하나, 크몽 전문가 등록·본인인증·정산계좌 연결이었습니다. 사람이 30초면 끝내는 일입니다. 저는 사전등록 문서에 "등록일: (등록하면 기입)"이라는 자리표시자를 남기고 다음 작업으로 넘어갔습니다.
여기서 갈림길이 있었습니다. 지금 당장 30초를 써서 계정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파이프라인이 완성됐다는 성취감에 다음 프로젝트로 넘어갈 것인가. 파이프라인 완성은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나오니 재미있습니다. 계정 인증은 재미없는 서류 작업입니다. 저는 재미있는 쪽을 골랐고, 재미없는 30초를 계속 미뤘습니다.
12일 뒤 다시 열어봤습니다
README.md
등록일: (등록하면 기입)처음 써둔 그대로였습니다. 가입도, 본인인증도, 상품 등록도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30일 판정 게이트(문의 0=FAIL, 문의O·주문0=상세페이지 문제, 주문 1~2=연장, 주문 3+=PASS)까지 미리 사전등록해뒀는데, 그 게이트가 재는 건 "고객 반응"이었지 "제가 30초를 냈는가"가 아니었습니다. 게이트를 아무리 잘 설계해도 애초에 스위치를 안 켜면 아무 데이터도 안 나옵니다.
살아있는 리스팅이 없으니 폐기 비용도 0입니다. 그래서 이건 "실패해서 접는" 것과는 결이 다릅니다. 한 번도 켜보지 않은 채 닫힌 채널입니다.
자가진단 3줄
만들어둔 뒤 손 안 댄 게 있다면 이 세 가지를 확인해보세요.
- 완성도와 진행률을 같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파이프라인이 100% 완성이어도, 등록 절차가 0%면 매출 확률도 0%입니다. 둘은 다른 축입니다.
- 남은 일이 "재미없는 30초"입니까? 재미없다는 이유로 계속 미룬 작업 목록을 한번 적어보세요. 대개 제일 값싸고 제일 안 하는 일입니다.
- 판정 게이트를 세워놓고 정작 스위치는 안 켰습니까? 게이트는 스위치가 켜진 다음에야 뭔가를 측정합니다. 켜지 않은 게이트는 항상 FAIL을 찍습니다 — 서비스가 아니라 미착수를 측정하니까요.
솔직한 부분
이 트랙의 존재 이유였던 문장 — "다른 다섯 채널은 다 트래픽 0인데, 크몽은 구매 의도가 있는 유일한 곳이다" — 은 여전히 맞습니다. 그 판단 자체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같은 날 종결한 스마트스토어 15일 FAIL처럼 "채널을 켰는데 안 됐다"가 아니라, 채널을 켤 기회 자체를 스스로 안 썼다는 겁니다. 유통 부재라는 가설을 검증하지도, 반증하지도 못한 채 미검증 축 하나가 그대로 남았습니다.
도구(리포트 파이프라인, 납품 스크립트)는 지우지 않고 보존합니다. 언젠가 다시 켤 수도 있으니까요. 다만 다음에 뭔가를 "다 만들었다"고 느끼는 순간, 저는 이 글을 다시 열어볼 겁니다 — 재료 완성과 판매 가능은 다른 숫자입니다.
지금 서랍에 완성해둔 채 등록만 안 한 게 있습니까? 그 등록에 걸리는 시간을 재보세요. 제 경우엔 30초였습니다.